‌총알이 관통하는 아픔의 땅 용산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근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주인(나라)이 5번 이상 바뀐 사례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흔치 않은 역사입니다. 조선말, 용산은 청나라 군사 주둔지가 되었고, 그다음 일본군의 주둔지, 그다음 미군의 주둔지, 독립으로 잠시 국군의 터가 되었지만, 6·25전쟁으로 북한군의 주둔지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미군기지가 되었습니다. 이 땅은 근대와 현대를 관통하는 우리나라 아픈 역사의 살아있는 현장인 셈이지요.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나무
한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근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일반인은 출입이 불가능했던 그 땅에 말은 못하지만 모든 것을 목격했을 나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여름에 제가 용산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기지 내의 둔지산에 가보니 짧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300년 정도 자란 느티나무들이 그 언덕 위에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나무의 시선으로 바라본 용산의 시간
용산 미군기지 내, 둔지산 자락의 한 느티나무의 순수한 시선을 모티브로 하여 동화를 써 내려갔습니다. 금단의 땅이 되어 일제강점기, 6·25전쟁, 미군기지 시대를 거치면서 나무와 소녀는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나무는 여러 시련을 거치면서 점차 쇠약해져 가지만 다시 만날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기다립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마침내 용산이 조국의 땅으로 돌아오면서 노인이 된 소녀도 나무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외세의 이권과, 사상, 야망으로 양분되고 찢긴 이 땅은 우리를 기다려왔습니다.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줄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이 북쪽에 있든 남쪽에 있든 상관없이 이 땅은 계속해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다릴 것입니다. 용산공원의 시대를 이끌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한 부족한 동화를 한 편 써보았습니다. 동화의 형식을 빌렸지만, 비단 어린이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이 땅의 수많은 당신들을 위한 책입니다. 용산공원은 긴 이별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묵직한 한 걸음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진심이 모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청년프로그래머 김주만_ 나무와 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