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3일 / 전쟁기념관 이병형홀

다양한 층위의 전문가를 모시고

용산공원에 적용가능한 공공미술, 예술기획, 문화콘텐츠에 대한 논의를 나누었습니다.


14:00 ~ 14:10     오프닝
14:10 ~ 14:30     발제 “사라지는 그리고 스며드는” (이재준 소장)
14:30 ~ 14:50     발제 “좋은 공원, 좋은 공공미술” (양철모 작가)
14:50 ~ 15:10     발제 “공원, 예술의 현장과 실천” (문경원 교수)
15:10 ~ 15:30     휴식
15:30 ~ 16:30     토론 “공공예술과 문화콘텐츠, 그리고 용산공원” (정다영 학예연구사 진행, 발제자 전원)
16:30 ~ 16:50     청중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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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1

사라지는 그리고 스며드는 (이재준 소장)

서울을 참 좋아합니다. 유례없는 특별한 도시가 바로 서울이죠. 서울의 지도 속 용산은 숲으로 무성한 모습이기에 그 안은 ‘자연’이 가득한 엄청난 무엇인가가 있는 공간일 거라 기대했습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들어가 본 그곳엔 수많은 건물, 즉 점적인 것들이 있었습니다. 공원이 예술에게 물었습니다. 공원과 예술 사이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 Paul Klee


잃어버린 용산을 찾아서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용산성도 용산에서 발견한 기억의 흔적인 점을 연결하여 별자리를 만들자. #용산집대성 용산을 둘러싼 10km의 경계에 수백 개의 작은 공원을 조성하자. #용산특별구 도시 자체를 야외박물관으로 만들자.’ 연구하고 보고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축제의 장’으로 기획하면 어떨까요?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 천양희, 사라지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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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2

좋은공원, 좋은 공공미술 (양철모 작가)

여러분은 우리 주변에 으레 있는 공원 속 예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용산공원에 생겼으면 하는 조형물이 아니라 역으로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조형물을 생각해봅시다.

예술조형물에 대한 고민, 좋은 공원이 만들어지는 과정


공공을 위한 도시의 조형물들이 상업적으로 변질되진 않았나요? 특정한 작가의 강한 상징성이 담긴 조형물은 용산공원 안에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별한 상징이 없어도 시민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새로운 시도와 실질적인 논의를 거친 예술작품이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리적으로 높이 솟은 예술품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하면서 ‘시공감’을 느낄 수 있는 조형적 공간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체험적 예술을 위해 시민, 예술가, 공공 간 논의 테이블을 구축하는 것이 좋은 공원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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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3

공원, 예술의 현장과 실천 (문경원 교수)

‘공원’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세계나 자신만의 가치관이 담기는 개념적인 공간입니다. 도심 속 인공적인 자연 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무슨 생각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즉, 공원이 삶에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은 무엇일까 고민해봅시다.

플랫폼으로의 역할과 예술적 실천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공원이 아니라 개념적 접근을 통해 진행했던 두 가지 예술작품을 소개합니다. < PROMISE PARK, 2013~2016 >는 모두가 떠나고 난 폐허의 자리에 이끼가 날아들고 최소한의 생명이 살기 시작하며 자연이 회복되고, 다시금 사람들이 찾아들어 ‘공원’이 만들어지는 예술적 상상을 제안한 작품입니다. 나아가 공원이라는 현장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실천적 요소를 고민하며 < 선유도공원 워크숍, 2016 >을 진행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장소에 대한 기억의 흔적을 담는 수단으로 ‘향’에 주목한 프로젝트로, 공원에 무언가 모뉴먼트를 남기기보다 많은 이들이 장소성을 향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용산공원을 예술의 관점에서 다룰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저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용산공원이 가진 지형적 특성과 역사성, 장소성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갈 때 비로소 공원으로서 예술적 실천으로 구현될 것입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서
그것이 새로운 가치를 나타내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재준 소장 ‌-







"관람 조형물이 아닌 예술적 체험의 공간에 대한 고민이
좋은 공원을 만드는 첫 번째 과정입니다."

-양철모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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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공공예술과 문화콘텐츠, 그리고 용산공원

1   미지의 공간, 용산기지

정다영 - 용산은 우리에게 어쩌면 백지상태에 가깝다. 단절된 상태로 축적된 시간 이후, 새롭게 변화하려는 움직임은 마치 ‘공원’이라는 새로운 피부를 이식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이라는 것은 단순히 조형적인 것, 결과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방법이자 실천적 태도로서 기능하는 것. 미지의 공간, 용산기지에 방문하여 어떤 이야기를 연상할 수 있었나?


문경원‌ - 남아있는 것들, 그리고 남겨질 것들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바라봤을 땐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 머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천에 있어서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이 참여해서 긴 호흡으로 진행된다면 멋있는 자산이 되지 않을까.


양철모‌ - 좋은 시설 환경이 갖춰져 있어 놀랐고, 또한 알려지지 않고 배제되는 목소리가 있지는 않을까 우려가 생겼다. 공원화 과정을 ‘피부 이식’에 비유했듯 좀 더 사려 깊은 고민을 통해 이뤄져야 하지 않나.


이재준‌ - 폭염주의보가 내렸던 여름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용산기지 안은 전혀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쾌적한 여름 한낮의 그곳은 봄, 가을, 겨울의 용산공원에 대한 기대감도 안겨주었다. 서울 안에서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서울이 산지를 품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가깝게 쉴 만한 인공의 자연이 필요한 것이다.









"예술가의 작업은 때로 무모하기도 하지만, 
함께 사유하고 생각의 폭을 넓혀나가도록 새로운 개념을 던지는 역할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 자체가 ‘공원’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경원 교수 -







"단절된 상태로 축적된 시간 이후, 새롭게 변화하려는 움직임은
마치 ‘공원’이라는 새로운 피부를 이식시키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다영 학예연구사 ‌-



2   아카이빙 프로그램, 공공예술 실현의 수단


정다영‌ - 아이러니하게도 공원이라는 것이 많은 것을 바꾼다는 가정하에 건설적인 방향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리의 취지가 열린 무대로서 여러 담론 남긴다는 것은 변화와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일종의 출발점이다. 공원과 예술이라는 주제 가운데서 아카이브라는 형식을 다루자. 보다 확장해서 예술적 시도로 기록을 제안해본다.


이재준‌ -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다. 역사적으로 흔적들을 지우면서 그 공간은 버려진다. 공적인 공간인 ‘길’에 대한 흔적은 모두 지워진다. 우리의 길이었는데 우리는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이다. 그 길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수많은 공간들이 서로 만나며 일어나는 여러 프로그램에 주목하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양철모‌ -  ‘공원’에 집중하면 녹지율 확보를 위해 대부분 건물들이 철거되어야 한다. 선택적으로 남겨지는 것에 대해 논의를 거치는 것이 아카이빙의 목적이다. 역사적인 요소가 있는 것만큼 예술가들이 조금이라도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과정이 되지 않을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정다영‌ -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 현재 모습을 보면서 불가능하다는 거다. 역사적 사실을 실체화, 가시화시키는 작업을 위해 예술가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양철모‌ - 호주의 한 미술관에서 진행한 비엔날레에 참여한 적이 있다. 예술가들의 작품과 더불어 시민 체험프로그램이 큰 비중을 차지해 신선했다. “미술관이 온전하게 운영되는 건 시민들의 지지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했던 담당 큐레이터의 설명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역시 끊임없이 만남과 교류의 장을 확장해야 한다.


문경원‌ - 일본 야마구치 예술정보센터는 예술소장품 구매에 투자를 하는 대신 시민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대부분 예산을 투입한 아주 독특한 구조로 운영되는 미술관이다. 전시를 담당하는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자들이 있었다. 일종의 컨퍼런스처럼 꾸준히 정기적으로 만나서 ‘예술가의 상상’을 같이 풀어보자는 취지였다. 리서치가 단순히 페이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의구심과 상상력으로 진행되는. 관련된 전문가가 모이고 아주 사소한 질문으로 시작했던 일이 말 그대로 ‘플랫폼’을 형성하여 역으로 예술가에게 감명을 주기도 했다.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지혜가 단순 기억이나 경험으로 치부되지 않고 아주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알게 된 아카이빙의 순기능을 체험할 수 있었다.


3   공원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

시민A‌ - 용산공원은 오로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이 되길 바란다. 꼭 필요한 역사적 건물만 존치하고 예술품 및 기타시설은 최소로 한, 자연 그대로의 공공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양철모: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처의 기능을 하는 자연 공간이겠지만 다른 지역에서 오는 방문객은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예술적 체험을 필요로 한다.

이재준‌ -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채우는 것에 집중하고, 비우는 것에는 익숙지 않다. 하지만 용산공원은 규모가 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조금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공원 조성에 여러 주체가 연관된 만큼 각자가 바라는 공원의 성격을 주체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시민B‌ - 서울은 공간이 부족한 것이 문제고, 현재 이미 다양한 기능을 하는 공원들이 있다. 그러므로 단순한 숲의 개념이 아니라 용산공원만이 서울 안에서 해낼 수 있는 역할을 궁리해보자. ‘공원’을 위한 녹지율 확보라는 수치적 한계에서 벗어나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성되는 것이 맞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에게 부분적, 임시적으로 내부를 개방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생성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배성호(국토교통부 용산공원기획단 공원정책과장)‌ - 미군 기지의 이전은 지금껏 수차례 미뤄졌고 이전 이후 반환절차에도 시간이 꽤 걸린다. 긍정적으로는 이 기간을 시민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기회라고 본다. 따라서 현 기지의 특별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도록 투어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고 임시 개방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 국토교통부 측에서 힘쓰고 있다. 또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에 따라 공원화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는 공론의 장에서 얼마든지 방향이 재설정될 수 있다.

4   문화와 공원의 관계

시민C‌ - 용산이 워낙 넓은 만큼 그 경계에서 발생한 문화 역시 다양하다. 주변 지역의 문화가 공원으로 흡수되는 방법이 있다면?

이재준‌ - ‘문화’는 실체적인 존재가 아니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용산이 가진 지역적 맥락은 어쩌면 서울이라는 큰 스케일에서 미술관의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이 예술작품을 통해 정신적 환기를 얻듯 용산공원의 자연적 요소는 주변 지역으로 쉼의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문경원‌ - 용산공원에 있어서 문화는 역사의 현장 그 자체이고, 따라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바뀌기 마련이다. 다음 세대가 수록할 문화는 어떤 모습일지 모른다. 자연과 비자연이 융합된 공간에서, 변치 않는 것과 변화하는 것 사이에서 우리가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2017년 6월 23일, 금요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삼각지역)


사회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정다영 학예연구사 / 국립현대미술관

발제  토론
문경원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양철모 작가 / 믹스라이스·공공미술삼거리
이재준 소장 / 리마크 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