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5일 / 전쟁기념관 이병형홀

건축과 역사 전문가를 모시고
용산기지 내 역사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방안에 대한 논의를 나누었습니다.

14:00 ~ 14:10        오프닝
14:10 ~ 14:40        발제1 “용산 미군주둔지 내 매장문화재의 현황과 조사 방안” (홍지윤 연구위원)
14:40 ~ 15:10        발제2 “용산 미군주둔지 내 일군과 미군의 건축유산 현황과 활용방향” (안창모 교수)
15:10 ~ 15:30        휴식
15:30 ~ 16:10        토론 “역사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그리고 용산공원” (김기수 교수 / 박준범 교수 / 발제자 전원)
16:10 ~ 17:00        청중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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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1

용산 미군주둔지 내 매장문화재의 현황과 조사 방안 홍지윤 연구위원

매장문화재는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과거에 만들어진 흔적이 지표 하에 매장되어있는 유구 및 유물을 말한다. 용산은 외세에 의해 점거되어 기지 내 여러 시설이 들어서면서 원지형이 대부분 훼손된 상태. 용산 일대에서 매장문화재를 통해 알 수 있는 역사적 흔적은 가장 빠른 구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한강 유역에 가장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한 백제의 유물 등이 있다. 근대에 들어서는 군사기지라는 특성상 접근의 제약을 받아 충분한 조사와 기록에 한계를 갖고 있다.

2005년     용산미군기지 전체 현황조사 / 잔존 문화재 및 지형조사
2008년     용산공원화사업 / 지표조사
2009년     용산미군기지 캠프 코이너 대사관 예정부지 조사 / 시굴조사


1   용산의 매장문화재_유물산포지

   1)  용산고등학교 옆, 야포 병영 및 화약고 근처
   2)  메인포스트 내 남쪽 일부 남아있는 자연 능선 지역
   3)  드래곤힐랏지 동쪽 일부 자연 능선지역
   4)  용산구청 맞은편 산 전체 지역
   5) 국방시설본부 및 용산우체국 남쪽, 이촌역에서 기지로 진입하는 게이트 주변부


2   용산의 매장문화재_표본조사대상지역

   1)  만초천 인접 충적지, 남영동~기지 지역
   2)  용산구청 남쪽 UN사 부지
   3)  용산기지 게이트 앞 수송부 지역
   4)  사우스포스트 운동·체육시설, 골프장 일대 지역
   5)  국립중앙박물관 서쪽 공터, 이촌역 진입 게이트 주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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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2

용산 미군주둔지 내 일군과 미군의 건축유산 현황과 활용방향 안창모 교수

용산이 군사기지의 역할을 하게 된 시기는 20세기 초로 추정되며, 한일의정서(1904.2.23)에 '한국주차군'이라는 표현으로 처음 등장하여 이후 '조선주둔군'으로 변경된다. 원지형의 '훼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땅이 깎여서 생기는 변형이고 하나는 기존의 땅이 다른 흙으로 메워져 만들어지는 변형이다. 용산 일대는 커다란 저습지였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군이 주변의 흙으로 메워 마른 땅이 되었다. 옛 지형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가치판단이 이뤄지고 나면 공원화 과정에서 매립된 땅을 다시 거두는 작업이 선행될 수 있다.

용산은 기지 내부만큼이나 주변 경계도 주목할 점이 많다. 용산 주변 인구가 늘어나며 상업 기능이 부족하게 되자 일군은 부지 일부를 상업지역으로 활용하였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남영아케이드’, 과거 지역의 명소였던 ‘성남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어 남아있는 관련 시설의 건물들은 공원화 이후에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며 세웠던 ‘호국신사’(1943-45)가 있는데, 신사로 올라가던 계단 흔적이 현재 해방촌에 남아있다.

용산기지 내 건축 유산에는 한미연합사 건물이 있다. 한국과 미국의 군사 공조체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건물로, 이후 존치될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미군병사 코이너의 이름을 딴 야포병부대인 캠프 코이너(Camp Coiner, 26연대)를 비롯한 군 장교 숙소, JUSMAG-K(주한미합동군사지원단), PX, 사령관저, 위수병원, 위수감옥 등 공원화 과정에서 활용 가능한 건물 및 시설이 많다.미군시설뿐 아니라 일군기지 때의 건물들도 상당히 남아있는데, 이는 미군의 입장에서 용산기지가 영구 주둔지라기보다 군사적 상황에 따라 용도가 바뀔 수 있는 부지이므로 기존 건물을 상당수 활용하는 전략을 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용산은 마치 외로운 섬처럼 오랜시간 외세에 의해 점거된 비운의 땅입니다.
본격적인 공원화 작업 이전에 부지 내 묻혀있을 지 모를 매장문화재에 대한
사전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 홍지윤 연구위원 -







"용산기지 내 건축 유산을 두고 우리의 것이냐, 일군이나 미군의 것이냐 논쟁은
소유를 넘어서는 가치적 판단의 관문이 필요합니다."

- 안창모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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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그리고 용산공원

1    용산 부지 역사의 조사 방향

박준범-용산기지는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소로, 미군이 이전하고 나면 충분한 역사적 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옛 기록을 보면 과거에 이 일대에 몽골군이나 청나라의 군대가 주둔했다는 이야기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근현대뿐 아니라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까지 연장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지 않을까.


홍지윤-문헌에 기록된 내용들은일대개 ‘용산이라는 지역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단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기록들이 실제 증거로 어떻게 나타나고 보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매장문화재 조사를 통해 과거 삶의 모습과 흔적이 실증적으로 나타나고 역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보이는 ‘문화재’의 측면에서 용산 기지에서 가장 확실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근대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의 상황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 그 이전 시대의 자료 중 실제로 관찰 가능한 것은 조선시대 묘지의 석물들, 기와를 굽던 관청인 와서의 기와편, 발굴된 한두 편의 백자편 등이다. 물론 그 이전 백제 시대의 유적, 더 이전의 청동기 혹은 신석기 등의 유적도 존재할 수 있지만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안창모-저는 근현대사와 근대 시기의 건축물을 연구하고 있지만, 근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근대 이전, 즉 조선시대에 대한 이해가 많이 필요하다 보니 관련 기록들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용산에 주둔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 기록에 나오는 땅이 과연 지금의 용산 땅일지 의구심이 든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전투방식은 선조의 신병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과연 서울에 상당 기간을 주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기록에 나오는 ‘용산’은 그러한 명칭을 가진 넓은 구릉지를 지칭하는 또 다른 지역이 아닐까 싶다. 역사 연구자분들은 문헌 기록을 살피는 데 익숙하지만, 오히려 지도와 실제 지형을 조사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에 대한 논쟁이 생기는 것 같다. 사실 임진왜란의 흔적이 가장 잘 남겨진 곳은 남해안 쪽에 왜군이 만든 왜성들인데, 용산 주변에는 왜성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도 없고 당시 저습지였던 용산 지역에 왜군이 주둔할 이유가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청나라 군대 주둔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땅의 형세와 전투 방식, 지도 등을 통해 보다 신중하게 검증한다면 문헌 기록만을 통한 연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기수-건축학에서 보는 역사는 고고학에서의 역사와 어떻게 다를까? 이는 단순히 ‘고고학은 더 오래된 역사를, 건축학은 최근의 역사를 다룬다’의 문제를 넘어선다. 건축 역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건물이 세워진 땅과 시간의 켜를, 즉 장소, 건축물, (시)공간이라는 세 가지를 함께 읽어내고 이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안창모 교수님이 지도를 통해 역사를 연구하시는 방식은 당연한 연구 방식이다. 다만 근대기 이후와 이전의 지도가 서로 축척 등 표기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실제 건축 역사 연구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 같다.




2    용산공원 내 역사적 요소의 반영

김기수-안창모 교수님의 발표를 보면 용산공원과 관련하여 문헌 관련 자료들은 많이 연구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에 용산공원화 작업이 진행될 때 이렇게 연구된 시간의 켜와 흔적들은 용산공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설계되는지, 아니면 중요하게 반영되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용산공원은 설계가가 초기 당선안에서부터 시간의 켜를 활용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 역사적 조사와 관련되는 설계 작업이나 방식 등에 대한 계획안이 있는가?


안창모-용산은 역사적 무게가 매우 큰 땅인데, 역사학자나 사회학자를 중심으로 이 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
만 미군이 이전하고 용산 부지를 반환한다 하더라도 온전히 연구가 이뤄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역사 분야나 사회학, 건축, 조경 등 다학제 분야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대규모의 상세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관련 예산들이 점차 확보되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은 더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기수-부산 하야리아 캠프 공원화 사업 당시 아쉬움이 많아, 용산공원화 사업에는 이런 아쉬운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중 한 가지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는 특히 주변 주민분들이나 시민분들이 생각해주셔야 하는 문제다. 땅이 가진 시간의 켜를 찾아가는 작업에는 행정절차를 비롯한 수많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부에서 거대한 작업이 준비되고 진행되는 중일 때가 많은데 이렇게 멈춰있는 듯한 상태를 주민분들이나 시민들께서, 또한 정부를 비롯한 행정 부처에서 견디기 어려워하실 때가 많다. 이런 문제에 대해 모두 함께 소통하고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또한 공원의 디자인은 역사적 요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시각화시켜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과거에 이곳에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단순히 팻말로만 표시하면 이곳에 찾아오는 시민분들은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료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이를 시각화시키는 방법을 디자이너와 긴밀하게 상의해야 한다. 부산 하야리아에도 복원한 신석기 유물이 있는데, 사실 공원 내에 전시된 것은 해당 유물을 모조품으로 만든 것이 많다. 그 장소에 그 사건, 그 유물이 일직선으로 연결될 때 가장 강력한 디자인의 힘이 표현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단지 글로 설명하거나, 편의에 따라 유물을 옮겨 파편처럼 전시하는 방식은 이제는 하지 말아야 할 디자인 작업들이 아닐까 한다. 또한, 좋은 공원이 되기 위해서는 주변 지역 또한 공원 계획 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부산에서는 하야리아 캠프가 부산시민공원이 된 후 주변 재개발이 이루어지며 공원이 아파트로 둘러싸이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용산 또한 군사지역에서 풀려나면서부터 이와 유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므로 도시계획에서 미리 고려해야 할 것이다.

3   부산시민공원의 사례(과거 하야리아 캠프 부지)

안창모-부산의 경우 부산시가 중심으로 하야리아 캠프 공원화 국제 공모를 수행하면서 조경가에게 공원프로젝트를 맡겼고, 초기에 부지 내 문화재 등에 대해서는 중요하지 않게 다루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김기수 교수님 등 여러 분을 중심으로 학생공모전을 실시했었는데, 이런 작업들이 실제로 공원화 프로젝트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하다.

김기수-당시 프로젝트를 맡았던 세계적 조경가가 처음으로 발표했던 기본 계획에서는 캠프 내부에 보존되는 근대 문화재로 보이는 것이 1개뿐이었지만, 이후에는 많은 수가 보존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학생 공모전이 직접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근대문화재 등의 요소들이 공원화 과정에서 중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부산의 경우 부지 반환 후 공원화작업 시작까지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기간에 행해진 주요작업은 환경 조사였다. 본래는 미군에 의해 오염된 부지를 정화하기 위해 출입을 봉쇄시키고 관련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라운드테이블 등의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부지를 개방하는 프로그램이 수행된 것이다. 페스티벌이나 전시, 그리고 시민들이 부지 안을 직접 걸어보는 행사 등을 통해 시민들이 많은 제안을 하게 됐다. 부산시에서 공원화 작업 당시 중요한 컨셉으로 생각했던 것이 부산에 없는 ‘평지공원’을 조성하여 세계적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주민들이 좋아하는 공원이 되어 있지만, 만약 조성 당시 시민 참여가 없었다면 주민들조차 안가는 공원이 되지는 않았을까 싶다. 세계적인 설계가가 설계하면 세계적인 공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막연한 착각일 것이다. 그 지역에서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이 되는 것이 바로 세계적인 공원이 되는 첫 번째 자격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시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들, 작업들이 공원 완공 전까지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대학생)-부산시민공원 사례에서, 시민들은 현재 공원에 만족하고 있는가? 과거 미군기지를 생태공원화 한 곳이고, 공원은 결국 시민들이 만족하는 공원이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부산 시민들이 실제 이 공원에 대해 만족감이 높은지 궁금하다.

김기수-개인적으로 저는 공원 근처에 살고 있다. 부산에는 도심 가운데에 위치한 공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부산시민공원에서는 주변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자주 나와 공원을 즐기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때때로 과거에는 부산 공원에서 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일례로 어린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카메라를 들고 오셔서 사진을 찍고 공원의 환경을 기록하는 작업 등을 본 적이 있다. 용산공원처럼 부산시민공원 또한 하야리아 캠프의 생태와 역사 간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봉착해있었고, 역사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역사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많이 있다.


4   역사 유적을 공원 안에 녹여내는 설계 방식

안창모-매장문화재 분야에서는 실제로 문화재를 발굴하면서 연구를 하고 계시는데, 발굴 작업에서 나온 문화재 중 정말 그 위치에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문화재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서울시의 경우 대부분 매장문화재 발굴 작업 시 정말 중요한 문화재 이외에는 기록을 남긴 후 위치를 옮겨 박물관 등 다른 곳에서 전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박준범-사실 고고학에서 어떤 지역을 개발하기 전에 이곳에 유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발굴보다 앞서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용산공원은 이를 먼저 생각하는 예방적 차원에서 충분한 역사의 흔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 땅이 어떤 역사의 장소였는가를 보여주는 부분들을 남겨 설계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안창모-지금까지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서는 주변을 막아놓고 보호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는데, 이제는 보존할 유물을 건축·대지와 어떻게 일체화할 것인가에 대해 많이 토론하고 있다. 최근 본 사례 중 청주 테크노 폴리스에 발굴된 구석기시대의 유구가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유물들은 원위치에 보존된 것은 아니고 옮겨서 보존하고 있는데 유물과 대지를 함께 연결할 수 있는 건축가가 땅과 역사, 장소와 시간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계를 진행하여 공사 중에 있다. 서울의 경우 종로의 공평지구나, 남산 조선신궁터 성곽유물 등의 보존에 대해 현상설계를 통해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작업들이 최근에 시작되었지만, 스페인이나 북아프리카의 경우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건축가들이 대지와 함께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작업을 많이 볼 수 있다. 키워드를 검색하시면 외국의 몇몇 선행 사례들도 찾아보실 수 있을 것이다.


홍지윤-우리나라의 사례 중 경주박물관 최근 신축 관에서 발굴된 유구들을 지하 공간 구조 그대로 보존하고, 그 위에 유리판을 씌워 전시하는 곳이 있다. 들어가면 아래의 유리판을 통해 발굴 현장과 유구들을 볼 수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서울에서는 종로 3가 파고다 공원 옆에 지하 1층을 박물관으로 개발한 ‘육의전박물관’을 들 수 있다. 용산의 경우 부지에서 발굴되는 유구가 무엇이냐에 따라 방식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방금 말씀하신 외국 사례의 경우 로마시대 건축물들은 그 구조가 명확하게 남아있고, 심지어 폼페이처럼 화산재로 덮여있어 걷어내기만 하고 그대로 보존하는 곳도 여럿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적을 자연스럽게 보존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 방금 말씀드린 두 가지 사례라고 생각한다.


안창모-건축구조의 경우 서양 건물들은 벽체의 힘으로 서는 건물이지만, 우리나라의 건물은 목구조를 기본으로 지붕의 무게로 이를 누르며 서는 건축물이기 때문에 지붕이 사라지면 건물이 무너지게 된다. 그래서 유럽이나 로마처럼 아름다운 폐허 구조를 살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근대 건축 유산은 조적조 방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유럽권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폐허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건물들이 어느 정도 있다. 따라서 최근 건축가들 또한 기존 건물을 리노베이션하여 과거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용산 기지 답사 때에도 위수병원이나 위수감옥을 보고 건축가들이 상당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5  미군기지 내 역사적 건물의 존치 여부에 대한 기준

안창모-이 기준은 상당히 상대적인 측면이 있는데, 1차적인 판단은 역사적·미학적·건축적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이후 시민들에게 공론화되면서 추가로 판단된다고 본다. 이 판단 기준 중 수치화할 수 있는 기준(정량적 기준)과 수치화할 수 없는 기준(정성적 기준)이 있는데, 문화재를 판단하는 수많은 정성적 기준들은 수치화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6   용산, 여성사(젠더사)의 관점에서의 접근

기계형(사단법인 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용산공원 라운드테이블 1.0에서 다루어지는 주제 중 여성, 젠더 등의 주제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11월까지의 주제들을 보면 조경, 건축, 역사, 도시, 전시 등 거의 외형적 문화유산에 대해 다루고 있고, 콘텐츠나 내러티브에 대한 내용은 없는 것 같다. 용산공원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여성 등 소수 집단의 목소리가 포함되어야 평화라는 메시지의 전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용산의 역사를 발굴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덮어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 2003년 퇴거 전까지 용산은 성매매집결소가 있던 곳이었다. 성매매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막달레나 공동체 관계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용산을 둘러싼 여성분들의 기억은 성매매 여성뿐 아니라 전쟁 시기 해방촌에서, 또는 식민지 시기 전화교환국에서 일하던 교환수 여성 400여 명 등 다양한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런 내용들이 공원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용산공원에 박물관이 또한 들어서게 될 텐데, 여성사박물관이나 위안부피해자 관련 역사관이 지어진다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국의 여성박물관 부지들은 모두 특별한 색깔을 가진 부지로, 용산기지가 이에 적합한 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사우스포스트 장교 숙소에 이와 같은 박물관이 지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배성호(용산공원추진단 공원정책과장)-용산공원화 사업은 2003년 용산공원화 및 미군기지 이전이 결정되면서 2005년 국가공원지정, 2007년 용산공원특별법 제정, 2008년 관련 조직이 만들어지고 2012년 국제현상공모를 거쳐 현재 기본 설계가 진행 중이다. 용산공원 기본설계의 컨셉은 훼손된 지형을 회복하고 녹지율을 높이며, 기존 건물 중 중요한 건물을 보존하고 나머지 건물은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큰 문제가 있었는데, 기지 내부 1000여 동의 건물 내 콘텐츠 공모 과정에서 관계 정부 부처의 안들이 다수 제출되면서 부처 간 나눠 먹기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당시 여성사박물관도 하나의 제안이었지만, 가장 큰 비판을 받은 과학관 신축 계획은 물론 경찰 박물관이나 아리랑역사문화관처럼 사실상 용산부지의 장소성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각 부처의 숙원 사업들이 몰려들면서 비난을 받게 되어 공원화사업을 거의 진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부처 간 나눠 먹기 식의 박물관 계획은 전면 백지화되고 기지 내부에 건물을 신축하지 않기로 선언하게 되었다. 미군이 올해 기지 이전을 한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연기되어 왔고 2017년까지 모든 잔류시설이 이전한다는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이전 후에도 환경오염 처리 작업 등의 반환과정 때문에 부지의 실제 반환까지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부지가 완전히 개방되기까지 수행되어야 할 콘텐츠 관련 연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군사기지라는 특성 때문에 아직 조사되지 못한 3가지 부분이 있는데 건물 내부 및 지하 공간(벙커), 그리고 토양오염이다. 이를 면밀하게 조사하여 기존에 수립한 기본계획을 보완할 계획이다. 용산공원은 국가에서 주도하는 공원이고, 대통령이 임기 내에 성과를 보기 위해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되는 공원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기간 동안 여유 있는 호흡으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가를 오랫동안 토론하고 소통하며 국민의 의견을 받아들일 예정이다.


시민(서울)- 이 문제는 오늘 공원탐독3: 용산공원과 역사유산에서 역사문화유산의 '활용’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용산공원의 주요 콘텐츠가 생태 또는 휴식이 될 것인지, 아니면 역사, 문화, 평화 등이 될 것인지, 혹은 둘 다가 될 것인지에 대해 시민들이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다. 이러한 공원 콘텐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고, 특히 시민 중심의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나야할 것이다. 


2017년 8월 25일, 금요일 오후 2시
전쟁기념관 이병형홀(삼각지역)

사회
김영민 교수 /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발제
안창모 교수 /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홍지윤 연구위원 / 중앙문화재연구원

토론
김기수 교수 / 동아대학교 건축학과
박준범 교수 /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발제자 전원